
Tuesday, June 09, 2009
새롭게 만나는 터키의 매력 한-터 수교 50주년 기념 터키 문화전



새롭게 만나는 터키의 매력
한-터 수교 50주년 기념 터키 문화전
글. 박광수 / 사진. 김현민. 와우이미지.
아시아와 유럽의 접점에서 동서를 연결하는 터키는 히타이트에서 시작해 로마,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 등 1만년에 걸쳐 20여 개의 문명이 탄생하고 사라져간 찬란한 역사의 현장으로 인류문명이 시작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이며, 신화 속 미다스왕의 고분과 트로이 목마, 노아의 방주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 인류문명의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다.
형제의 나라 터키
한국과 터키의 관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은 혈맹(血盟), 즉 피로 맺은 형제(blood brother)다. 이미 알려진 대로 양국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1만 5천여 명의 터키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의 영향이 크다. 터키인들은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준 한국이 불과 반세기 만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1999년 이스탄불 대지진으로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한국이 성심껏 도와준 일도 터키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터키 참전 용사들의 지극한 한국 사랑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다시 만개했다. 2007년은 ‘한국-터키 우정의 해’이자 수교 50주년을 맞는 해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9월에는 터키영화제와 터키민속춤, 10월엔 터키군악대와 터키 클래식 음악 연주회가 한국인을 기다리고 있다.
터키 미술의 화려함을 만나다
터키 문화전 ‘이스탄불에서 불어온 바람’이 한국-터키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이스탄불 문화원과 한국-터키 친선협회, 이스탄불 시청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후원으로 지난 7월 18일부터 30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터키의 전통 세밀화 ‘미니아튀르’, 파피루스 위에 그린 유채화,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문양을 만들어 내는 터키 전통미술 ‘마블링’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평상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터키 미술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미니아튀르’는 2006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에서 중요소재로 등장하기도 하는 터키 전통민화로 19세기 중엽까지 종교서적의 삽화나 장식에 많이 이용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적인 미니아튀르 화가 오메르 딘체르 킬리치(Omer Dincer Kilic)의 작품 40여 점을 선보였는데, 작은 화폭에 정밀하게 그려낸 스케치 위에 화려한 원색을 채색해 당시 왕족들의 풍족하고 화려한 삶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파피루스는 지중해 연안의 습지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높이 1~2미터의 식물로,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뒤 말려 종이처럼 만들었는데 인류 최초의 종이로 잘 알려져 있다. 파피루스는 가볍고 동그랗게 말려 휴대가 간편하여 8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기록매체로 애용되다가, 중국의 종이 제조법이 아랍을 통해 유럽에 전해지면서 사라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피루스 위에 유채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카디르 에킴(Kadir Ekim)의 작품 13점이 전시되었는데 파피루스 특유의 질감에 유화의 부드러운 터치가 가미되어 만들어 낸 화풍이 매우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마블링은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 우연의 효과를 살려 작품을 만드는데, 종이를 기름 섞은 물 위에 흡착시켜 만든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지를 사랑한 것만큼 오스만 터키인들은 당시에 사용했던 아랍문자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외국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아랍문자를 이용한 마블링을 제작함으로써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마블링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이자 터키 최고의 미술인으로 평가받는 사드레딘 오즈치미(Sadreddin Ozcimi)의 마블링 작품 15점도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테지만 막상 의도했던대로 만들기는 어려웠던 마블링. 그러나 이날 전시된 마블링 작품들은 정교하게 계산된 우연을 통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보여 주었다.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터키의 매력
이들 미술작품과 함께 터키의 아름다운 풍경과 화려한 역사,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 60여 점도 전시되었다. 1Km 너비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이스탄불은 육상 실크로드의 머나먼 여정이 마침내 유럽에 첫발을 딛는 위치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유적과 이슬람 문화, 옛 것과 새 것,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곳이며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며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린다.
로마 제국 전성기에는 서유럽에 라틴 문화가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동서로 분열된 뒤 그리스 반도에 중심을 두고 있던 동로마 제국은 헬레니즘 문화의 전통이 강했고 이 문화적 전통이 동방의 요소와 결합하여 비잔틴 문화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터키가 비잔틴식 건축과 회화 등 서유럽과는 구별되는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터키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거대한 초원국가이다. 전시된 사진들을 통해서 이스탄불의 풍경, 거대한 초원, 여러 민족의 생활 모습 등 다양한 터키의 모습을 감상한 관람객들은 터키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후기를 남겼다.
“평상시에도 터키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터키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아쉬운 점은 이런 행사들이 좀 더 많이 알려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관람객 이진영 님
이번 전시에서는 터키의 전통 세밀화 ‘미니아튀르’, 파피루스 위에 그린 유채화,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문양을 만들어 내는 터키 전통미술 ‘마블링’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평상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터키 미술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터 수교 50주년 기념 터키 문화전
글. 박광수 / 사진. 김현민. 와우이미지.
아시아와 유럽의 접점에서 동서를 연결하는 터키는 히타이트에서 시작해 로마,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 등 1만년에 걸쳐 20여 개의 문명이 탄생하고 사라져간 찬란한 역사의 현장으로 인류문명이 시작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이며, 신화 속 미다스왕의 고분과 트로이 목마, 노아의 방주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 인류문명의 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다.
형제의 나라 터키
한국과 터키의 관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은 혈맹(血盟), 즉 피로 맺은 형제(blood brother)다. 이미 알려진 대로 양국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1만 5천여 명의 터키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의 영향이 크다. 터키인들은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준 한국이 불과 반세기 만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1999년 이스탄불 대지진으로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한국이 성심껏 도와준 일도 터키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터키 참전 용사들의 지극한 한국 사랑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다시 만개했다. 2007년은 ‘한국-터키 우정의 해’이자 수교 50주년을 맞는 해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9월에는 터키영화제와 터키민속춤, 10월엔 터키군악대와 터키 클래식 음악 연주회가 한국인을 기다리고 있다.
터키 미술의 화려함을 만나다
터키 문화전 ‘이스탄불에서 불어온 바람’이 한국-터키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이스탄불 문화원과 한국-터키 친선협회, 이스탄불 시청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후원으로 지난 7월 18일부터 30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터키의 전통 세밀화 ‘미니아튀르’, 파피루스 위에 그린 유채화,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문양을 만들어 내는 터키 전통미술 ‘마블링’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평상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터키 미술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미니아튀르’는 2006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에서 중요소재로 등장하기도 하는 터키 전통민화로 19세기 중엽까지 종교서적의 삽화나 장식에 많이 이용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적인 미니아튀르 화가 오메르 딘체르 킬리치(Omer Dincer Kilic)의 작품 40여 점을 선보였는데, 작은 화폭에 정밀하게 그려낸 스케치 위에 화려한 원색을 채색해 당시 왕족들의 풍족하고 화려한 삶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파피루스는 지중해 연안의 습지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높이 1~2미터의 식물로,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뒤 말려 종이처럼 만들었는데 인류 최초의 종이로 잘 알려져 있다. 파피루스는 가볍고 동그랗게 말려 휴대가 간편하여 8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기록매체로 애용되다가, 중국의 종이 제조법이 아랍을 통해 유럽에 전해지면서 사라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피루스 위에 유채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카디르 에킴(Kadir Ekim)의 작품 13점이 전시되었는데 파피루스 특유의 질감에 유화의 부드러운 터치가 가미되어 만들어 낸 화풍이 매우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마블링은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 우연의 효과를 살려 작품을 만드는데, 종이를 기름 섞은 물 위에 흡착시켜 만든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지를 사랑한 것만큼 오스만 터키인들은 당시에 사용했던 아랍문자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외국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아랍문자를 이용한 마블링을 제작함으로써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마블링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이자 터키 최고의 미술인으로 평가받는 사드레딘 오즈치미(Sadreddin Ozcimi)의 마블링 작품 15점도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테지만 막상 의도했던대로 만들기는 어려웠던 마블링. 그러나 이날 전시된 마블링 작품들은 정교하게 계산된 우연을 통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보여 주었다.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터키의 매력
이들 미술작품과 함께 터키의 아름다운 풍경과 화려한 역사,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 60여 점도 전시되었다. 1Km 너비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이스탄불은 육상 실크로드의 머나먼 여정이 마침내 유럽에 첫발을 딛는 위치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유적과 이슬람 문화, 옛 것과 새 것,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곳이며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며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린다.
로마 제국 전성기에는 서유럽에 라틴 문화가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동서로 분열된 뒤 그리스 반도에 중심을 두고 있던 동로마 제국은 헬레니즘 문화의 전통이 강했고 이 문화적 전통이 동방의 요소와 결합하여 비잔틴 문화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터키가 비잔틴식 건축과 회화 등 서유럽과는 구별되는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터키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거대한 초원국가이다. 전시된 사진들을 통해서 이스탄불의 풍경, 거대한 초원, 여러 민족의 생활 모습 등 다양한 터키의 모습을 감상한 관람객들은 터키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후기를 남겼다.
“평상시에도 터키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터키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아쉬운 점은 이런 행사들이 좀 더 많이 알려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관람객 이진영 님
이번 전시에서는 터키의 전통 세밀화 ‘미니아튀르’, 파피루스 위에 그린 유채화,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문양을 만들어 내는 터키 전통미술 ‘마블링’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평상시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터키 미술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Moroco







일찍이 아랍의 지배자들 사이에선 미지의 세계로 널리 알려진 모로코. 대서양과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접해 있는 모로코를 선망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사람들은 비단 아랍인들뿐만 아니었다. 페니키아, 그리스, 그리고 세계의 정복자 로마까지. 미지의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했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7세기경부터 이 땅을 지배한 아랍인들이다.
Morocco
Photo Gallery
Erg Chebbi , dune field near village of Merzouga, on edge of Sahara Desert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_ 모래사구_ 에르그 《모래로 뒤덮인 광대한 지역》
모로코에서는 많은 헐리우드 영화가 촬영되었다.
모로코에서 처음 촬영된 영화는 말린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였고 1942년 카사블랑카가 만들어졌다. 피터 오 툴(Peter O'Toole)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으로 모로코를 활개치고 다니는 바람에 모로코는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환상의 나라로 부풀려졌다.
푸른빛 문과 지중해의 빛으로 감도는 좁은 골목안의 집들
카사블랑카의 자홍색 황혼의 해변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카사블랑카
전세계의 모든 도시들 중 헐리우드는 바로 이곳을 택해 이국적 식민지땅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만약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를 보기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모로코 최대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카사블랑카는 이미 거대도시이다. 말끔한 수트와 세련된 선글라스들 사이에서 모로코 전통의상인 뷔르누스(burnous)가 오히려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항구도시는 프랑스가 재건하기 전까지 침체일로를 걷고 있었다. 프랑스는 큰 길을 닦고 시민공원을 만들고 모레스크(무어인)들에게 공공건물을 할당했다.카사블랑카의 성지인 유서지구도 한번 둘러볼 만 하다. 하산 2세 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 쁠라스 모하메드 5세(Place Mohammed V)광장에 가면 모로코에서 가장 인상깊은 모레스크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카사블랑카는 모하메드 5세 공항을 라바트와 공유하고 있으며 유럽과 중동으로 정기운행을 한다.
성채의 요새들_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도시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모로코의 상징적 주임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길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웅장함이 이곳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성지인 엘 발리(el-Bali) -올드 페그라베스-는 현존하는 가장 큰 중세도시들 중 하나이다. 이 성지는 성벽과 큰 문으로 둘러싸여져 더욱 웅장해 보인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여느 도시들과는 달리 엘 발리는 한번도 벽이 무너진 적이 없었다. 대신 거주민이 서남쪽으로 이동해서 구릉지대에 퍼져 새 페그라베스의 북남쪽으로 원호모양을 이루었다. 9400개의 거리와 골목들로 이루어진 옛도시에는 1350년대에 지어진 높은 메데르사 부 이나니아(Medersa Bou Inania) 신학대학이 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헤너 수크(henna souq)는 머리 염색재료와 여성의 손발 문신재료로 가득하다. 바로 옆에 있는 페그라베스 엘 즈디드(Fès el-Jdid)는 유태인 사회의 중심으로 볼만한 건물들이 많이 있다. 두도시사이에 있는 다르바타(Dar Batha) 박물관이 있다. 라바트, 마라케쉬, 탄제르에서 열차를 타는 것이 이곳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방법이다.
모로코에는 성채가 많다. 주정부궁으로 쓰는 성채이다.
다른 여러 북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모로코는 역사이래 한 종족에 의해서 지켜져왔다. 버버족(혹은 땅의 사람이란 뜻으로 이마지엔)은 수천년전에 이곳에 정착했고 한때는 모로코와 이집트 사이의 일대를 지배하기도 했다. 버버족은 여러 씨족, 부족으로 나뉘어져 항상 독립을 갈망했다. 아프리카 국가중 가장 매력적인 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독립심 덕분일 것이다. 페니키아인들도 버버족을 몰아내지 못했고 심지어 로마인들도 BC 146년 카르타고 함락후 조차도 버버족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관광객을 위한 코프라 쇼
마라케쉬
모로코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서 시장과 축제로 유명한 전 수도로서, 마라케쉬는 더할 나위없이 생기발랄한 도시이다. 가장 번화한 중시지는 쁠라스 드제마 엘 프나(Place Djemaa el-Fna)라는 큰 광장이다. 야외음식점이 줄지어 있고 군침을 돌게하는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저글러, 이야기꾼, 뱀장수, 마술사, 서커스, 광인들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 수크스(시장)은 모로코에서 최고이며 가격이 저렴한 호텔들도 아주 많다. 유서지구의 볼거리는 알모라비드 스타일의 쿱바 바아딘(Koubba Ba'adiyn) 서원 별채, 웅장한 쿠투비아(Koutoubia)서원, 그리고 모로코 예술박물관인 빨레 다르 시 사이드(Palais Dar Si Said) 등이다. 내륙도시인 이곳으로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서 기차와 버스가 정기운행한다.
거친 밀가루의 거친 세모닐라 파스타의 이 음식은_ 북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다이어트 음식이다.
모로코의 음식은 특이하지는 않지만 맛이 좋고 든든한 편이다. 주식은 쿠스쿠스(couscous)라는 것인데 세모리나(semolina)를 곱게 갈은 것으로 보통 야채와 양 캐서롤과 함께 나온다. 스위트 민트차를 즐겨마시지만 그렇다고 술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모로코엔 금주령이 없다.
귀가 찢어지는 사원의 예배소리를 알리는 스피커와 위성 안테나 접시_
아주 오래된 것과 현대적인 것이 박힌 페스 골목길.
영국의 권위있는 BBC TV에서는 페스(Fes)의 골목에 대해서 특집방송을 내보낸 일이 있었다. 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진행과정과 지상 최대의 미로골목이 완성되기까지. 그 내용은 이렇다. 아주 오래 전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크고 작은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세월이 흐르면서 험준한 미들 아트라스 산맥을 동서로 연결하는 중간 위치에 자리잡은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여러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었다. 빈번한 전쟁으로부터 목숨과 재산을 보존할 목적으로 주민들은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로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Essaouira
Photo Gallery
Essaouira's old waterfront city nestled in behind ramparts
에사우이라의 바닷가 성채
Docked fishing boat awaiting repairs
항구의 조선소에 정박중인 배를 수리하고있다.
Smiling musicians in the streets of Essaouira
에사우이라에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길거리 음악사
에사우이라(Essaouria)
개별여행자에게 인기있는 해변마을이다. 팩키지 여행상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이곳의 아름다운 해변이 남쪽으로 수킬로 미터나 뻗어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마을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휴식.이곳이 요새는 포르투갈, 프랑스, 그리고 버버의 군사건축의 혼합물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규모의 웅장함이 이 마을의 신비스러움을 더해준다. 이 마을이 면한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스칼라 뒤 뽀(Skala du Port)는 경치가아주 좋아 오손 웰스(Orson Welles)가 그의 영화 오델로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F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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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2세의 이슬람사원
모하메드 5세는 1957년 자신을 왕으로 격상시켰고 4년뒤 아들인 하산2세(Hassan II) 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산 2세는 스페인 영역이던 서사하라까지 평화행진을 함으로서 모로코 국민의 가슴속에 깊은인상을 심어주었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무려 35만이 넘는 자원병력의 힘으로 하산의 추종자들은 풍부한 광산지대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토착 사라위스(Sahrawis)들을 정복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 십만여명이 넘는 거주자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구이아 알 함라(Saguia al-Hamra) 와 리오 드 오로(Rio de Oro)가 이끄는 서 사하라 인민전선은 그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모로코를 상대로 길고 섬뜩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페스의 아주 오래된 염색공장
미로를 연상시키는 골목길로 상징되는 페스의 자랑거리이자 주민들의 삶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죽이다. 골목과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페스의 가죽산업을 주도하는 곳은 겉보기에도 매우 초라하고 허름해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터를 잡고 있는 가정집이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 문을 통과하여 집 안으로 들어서면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광경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수백 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페스의 가죽들은 양과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긴 다음 원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탱크에 장시간 보관한다. 가죽의 종류에 따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털을 제거하거나 가죽을 손질하여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는 염색용 탱크로 옮겨 염색을 실시하고 용도에 따라 그늘과 햇빛에서 건조한다.
페스의 가죽 제품이 밀라노와 파리의 유명 브랜드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까닭은 모든 공정과정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원료 또한 오직 자연에서 생산된 것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충 추산해도 수십 곳에 이르는 공장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간혹 기업형태를 띠고 있는 곳도 있으나 그 숫자는 극히 적다. 지상 최대의 가죽 생산지답게 많은 주민들은 가죽과 연관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가죽 생산부터 각종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 전체 인구의 20%에 이른다.
가죽으로 대표되는 페스인 만큼 골목과 가정을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나 공예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공방과 상점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골목을 따라 조성된 공방에서 제작되는 공예품은 너무 앙증스럽고 아름다워 방문객으로 하여금 수시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페스의 공예품은 독특하고 섬세한 문양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하여 골목을 찾는 방문객은 물론이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도 너나없이 가죽제품을 구입하기에 여념이 없다.
Ornate crafts for sale at the Fès market
페스 시장에서 파는 장식수공예품들
페스
영국의 권위있는 BBC TV에서는 페스(Fes)의 골목에 대해서 특집방송을 내보낸 일이 있었다. 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진행과정과 지상 최대의 미로골목이 완성되기까지. 그 내용은 이렇다. 아주 오래 전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크고 작은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세월이 흐르면서 험준한 미들 아트라스 산맥을 동서로 연결하는 중간 위치에 자리잡은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여러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었다. 빈번한 전쟁으로부터 목숨과 재산을 보존할 목적으로 주민들은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로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서기 809년에는 이드리스 2세에 의해 세워진 이드리스 왕국의 수도이기도 한 페스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옛 수도보다는 달동네에 가깝다. 실망과 기대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페스의 구도심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컸다. 좁은 골목길이 끝났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다시 새로운 골목이 시작되고 사방으로 연결된 작은 골목들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숫자가 더 늘어나 골목길을 걸을수록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골목이 얼마나 되기에 세계 최대의 골목길로 알려져 있을까. 궁금증이 발동하여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에게 골목의 총 길이를 묻자, 그의 대답은 구 도시의 반경은 2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골목의 길이는 자그마치 70킬로미터나 된다는 설명이다. 반경의 35배에 가까운 골목길.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세 번이나 거듭 확인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미로를 연상시키는 골목길로 상징되는 페스의 자랑거리이자 주민들의 삶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죽이다. 골목과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페스의 가죽산업을 주도하는 곳은 겉보기에도 매우 초라하고 허름해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터를 잡고 있는 가정집이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 문을 통과하여 집 안으로 들어서면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광경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수백 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페스의 가죽들은 양과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긴 다음 원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탱크에 장시간 보관한다. 가죽의 종류에 따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털을 제거하거나 가죽을 손질하여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는 염색용 탱크로 옮겨 염색을 실시하고 용도에 따라 그늘과 햇빛에서 건조한다.
페스의 가죽 제품이 밀라노와 파리의 유명 브랜드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까닭은 모든 공정과정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원료 또한 오직 자연에서 생산된 것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충 추산해도 수십 곳에 이르는 공장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간혹 기업형태를 띠고 있는 곳도 있으나 그 숫자는 극히 적다. 지상 최대의 가죽 생산지답게 많은 주민들은 가죽과 연관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가죽 생산부터 각종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 전체 인구의 20%에 이른다.
가죽으로 대표되는 페스인 만큼 골목과 가정을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나 공예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공방과 상점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골목을 따라 조성된 공방에서 제작되는 공예품은 너무 앙증스럽고 아름다워 방문객으로 하여금 수시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페스의 공예품은 독특하고 섬세한 문양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하여 골목을 찾는 방문객은 물론이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도 너나없이 가죽제품을 구입하기에 여념이 없다.
페스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으로 몇 가지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골목길을 전문으로 안내해주는 소년과의 만남이었다.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장의 입구를 찾을 수 있지만 처음 페스를 찾았을 때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입구를 못 찾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난 구세주는 모로코의 전통복장에 모자까지 착용한 소년이었다.
이 소년은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순간에 알아보고서 가죽공장으로 안내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몇 시간 후 알게 된 것이지만 페스에는 사진기를 둘러맨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하나같이 길을 헤매기 때문에 길 안내를 하는 직업이나 부업으로 실시하는 소년과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소년의 표정이 너무 맑고 순수해 보여 그의 말을 믿고 따라나서던 나는 불과 5분도 지나기 전에 그의 손에 거금을 쥐어주었다. 그가 요구한 금액은 자그마치 30불. 3불도 아닌 30불이란 소리에 그 이유를 묻자 길을 안내해주는 정당한 수고료란다. 얼마 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던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사진을 촬영할 심정으로 그에게 길 안내비용으로 10불을 지불하는 선에서 타협을 끝내고 염색공장으로 이동했다.
미로 같은 골목과 가죽으로 유명한 페스는 참으로 볼거리가 많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는 여러 개의 게이트마다 형성된 시장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광장에 자리한 앙증스러운 공방과 상점에 이르기까지. 이런 흥미로운 삶의 공간들이 즐비한 페스지만 한 가지 여타지역하고 분명하게 구분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 중에는 여성도 간혹 보이지만 물건을 거래하는 주체가 모두 남자라는 사실. 회교를 신봉하는 아랍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은 가정집이나 작은 골목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거나 모이는 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이를 떠나 많은 아낙네들은 시장에 와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물건을 고르지 않고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물건은 남자들이 직접 구입해 온다. 남성들이 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한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여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수시로 관찰해 본 결과 대부분의 물건은 남자들이 구입하고 여자들은 휴식을 즐기다 남편이 물건을 구입해 오면 함께 집으로 향한다.
물건을 구입하는 흥미로운 방법과 더불어, 미로와 같은 길과 가죽 공방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페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볼거리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마을 외곽에는 포장된 신작로도 있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옛 도시지역에서 자동차는 물론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구나 목적지에 가려면 직접 걷거나 당나귀를 이용해야 한다. 페스의 주민들이 교통수단으로 걷거나 당나귀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골목이 너무 좁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지점은 모두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페스의 구 시가지는 오직 사람과 당나귀만 통행이 가능하다.
인간이 살 수 없을 곳이라고 생각하는 고원과 사막에 마을이 있고, 한번 들어온 길을 다시 찾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도시 페스. 어쩌면 똑같아 보이는 골목과 주변 풍경을 조금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여느 곳에서 볼 수도 없는 이런 골목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페스로 향하여 움직이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Marrakesh
Photo Gallery
Man with trained falcon, traditionally used to hunt Houbara Bustard birds
한남자가 훈련된 송골매와 함께 있다_ 전통적으로 전쟁의 메신저로 매를 사용했다.
자크 마졸레르 화가의 집_ 지금은 이슬람 현대 미술관으로 바뀌었다_ Majorelle House: once home of painter Jacques Majorelle, now an Islamic art museum
모로코는 모둔 종류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 같다. 프랑스의 네오바로크 화가인 유진 드라크로아(Eugene Delacroix)는 1830년대 모로코를 방문한뒤 모로코를 그리기 위해 몇통의 물감을 쏟아부었는지 모른다. 시장풍경, 하렘생활, 사자 사냥등이 그의 캔버스를 장식했다.
몇대의 초록마차가 서있다_ 모로코의 말들은 아주 고분고분하다_ Several green carriages, and some very obedient horses
마라케쉬의 식당가
젬마 궁에 엄청나게 큰 모자를 눌러쓴_ 물장사들_ 더운 나라여서 관광객에게 물장사 사업이 괜찮다_ Water sellers, wearing enormous hats, in Place Jemaa El Fna
달팽이가 주식인 나라_ Boiled land snails, usually served with hot sauce, at Djemaa el-Fna market
다양한 뜨개질로 만든 모로코 특유 디자인의 크로셔_ 뜨개질 수공예품 모자들이 진열 되어 있다.Various crocheted hats for sale in Souk on Rue du Souk el-Kebir
의회궁_ Lolly-like trees outside Palais des Congres convention centre
마라케쉬
모로코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서 시장과 축제로 유명한 전 수도로서, 마라케쉬는 더할 나위없이 생기발랄한 도시이다. 가장 번화한 중시지는 쁠라스 드제마 엘 프나(Place Djemaa el-Fna)라는 큰 광장이다. 야외음식점이 줄지어 있고 군침을 돌게하는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저글러, 이야기꾼, 뱀장수, 마술사, 서커스, 광인들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 수크스(시장)은 모로코에서 최고이며 가격이 저렴한 호텔들도 아주 많다. 유서지구의 볼거리는 알모라비드 스타일의 쿱바 바아딘(Koubba Ba'adiyn) 서원 별채, 웅장한 쿠투비아(Koutoubia)서원, 그리고 모로코 예술박물관인 빨레 다르 시 사이드(Palais Dar Si Said) 등이다. 내륙도시인 이곳으로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서 기차와 버스가 정기운행한다.
사진_ 론리 프래닛
글_ justinKIM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지중해inBLUE ˚통
모로코 신비로운 아름다움
http://joiedevivre.tistory.com/1249
모로코 ① 지중해의 빛과 혼
http://tong.nate.com/justinkim/44292711
모로코 ② 천년고도_ 페스
http://tong.nate.com/justinkim/44293237
모로코 ③ 사진여행_ 론리 프래닛
외교관과의 대화_클리미쉬 서기관 인터뷰
원문 & 사진 : http://blog.naver.com/ilovemofat/140069489056
구텐 탁(Guten Tag-독일어로 ‘안녕하세요’)? 갑자기 웬 독일어냐고요? 오늘 소개할 나라가 바로 ‘독일’이거든요. 독일은 유럽 중부에 있는 나라로, 여러 개의 독립국이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거쳐 독일제국으로 통합되었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나뉘었다가 1990년 통일되었고요.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가 통일이 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죠.
특히 2009년 4월은 독일과 한국에 있어 특별한 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한국을 파트너 국가로 해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1947년 처음 열린 이후 올해로 62회째를 맞는 세계적인 전시회인데, 올해는 4월 20일부터 24일 까지 에너지, 일반기계류, 엔지니어링 및 자동화 등 11개 분야 전시품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가 ‘행사 동반국가’로 지정돼 우리나라의 산업과 문화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기 때문에 독일뿐만 아니라 EU국가에 한국의 산업과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승수 총리도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해,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네덜란드 얀 페터 발케넨데 총리 등 유럽 정상급 인사들과 함께 녹색성장 전략에 대해 논하였답니다.
독일과 한국은 현재 한국과의 외교에 힘쓰고 있어요. 최근 독일정부는 한국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홈페이지를 열어 적극적으로 자국의 문화와 정보를 홍보하고 있답니다. 단순히 우리가 유럽의 국가로 인식했던 ‘독일’에 대해 좀 더 깊숙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래서 오늘 특별한 게스트를 모셔볼까 합니다.
주한독일대사관의 Dr. 클리미쉬 1등 서기관입니다.
주한독일대사관 Dr. 클리미쉬 1등 서기관 인터뷰
구텐 탁(Guten Tag-독일어로 ‘안녕하세요’)? 갑자기 웬 독일어냐고요? 오늘 소개할 나라가 바로 ‘독일’이거든요. 독일은 유럽 중부에 있는 나라로, 여러 개의 독립국이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거쳐 독일제국으로 통합되었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나뉘었다가 1990년 통일되었고요.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가 통일이 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죠.
특히 2009년 4월은 독일과 한국에 있어 특별한 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한국을 파트너 국가로 해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1947년 처음 열린 이후 올해로 62회째를 맞는 세계적인 전시회인데, 올해는 4월 20일부터 24일 까지 에너지, 일반기계류, 엔지니어링 및 자동화 등 11개 분야 전시품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가 ‘행사 동반국가’로 지정돼 우리나라의 산업과 문화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기 때문에 독일뿐만 아니라 EU국가에 한국의 산업과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승수 총리도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해,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네덜란드 얀 페터 발케넨데 총리 등 유럽 정상급 인사들과 함께 녹색성장 전략에 대해 논하였답니다.
독일과 한국은 현재 한국과의 외교에 힘쓰고 있어요. 최근 독일정부는 한국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홈페이지를 열어 적극적으로 자국의 문화와 정보를 홍보하고 있답니다. 단순히 우리가 유럽의 국가로 인식했던 ‘독일’에 대해 좀 더 깊숙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래서 오늘 특별한 게스트를 모셔볼까 합니다.
주한독일대사관의 Dr. 클리미쉬 1등 서기관입니다.
주한독일대사관 Dr. 클리미쉬 1등 서기관 인터뷰
안녕하세요? 클리미쉬 서기관님. 반갑습니다. 한국어가 유창하시네요. 한국에 오신지는 얼마나?
A: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 본부에서 2년 정도 있다가 첫 외국 발령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그 이전에는 부모님을 따라 방학동안 한국에 올 때도 있었고 대학생일 당시에는 1년간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있었어요.
그렇군요. 외교관의 길을 선택한 동기가 무엇인가요?
A: 처음에 제 꿈은 외교관이 아니었어요. 대학교 다닐 때 전공이 경영이었어요. 그 중에도 재무관리가 세부전공이었지요. 저는 사람을 만나고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학생도 가르치고 제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도 할 수 있는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박사과정으로 재무관리를 공부하면서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제 고등학교 친구가 외무부(舊 외교통상부)에 이력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친구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1차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말았어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교관의 일이 제가 소망하던 사람도 만나고 제가 원하는 공부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외교관이 되려면 어떤 특별한 시험이 있나요? 한국처럼 고시가 존재 하나요?
A: 고시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한국하고는 조금 달라요. 한국과 달리 특이한 점은 먼저 이력서를 외무부에 제출 하지요. 외무부는 지원자의 지원서를 보고 1차 서류전형에서 시험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추려냅니다. 아무나 시험을 볼 수 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한국 분이셔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제 3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기 때문에 외국어 점수에서 다른 지원자들보다 차별점이 있었어요. 독일에서 외교관이 되려면 특이한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매우 유리하거든요. 일본어나 한국어 모두 독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언어였기 때문에 저는 1차 서류에서 합격할 수 있었어요. 시험은 한국처럼 어렵지 않아요. 경쟁률은 약 40대 1 정도랍니다.
지금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며 한국에서 일하면서 어려움점이 있나요? 예를 들면 타국에서 여성 외교관의 신분이 주는 부담감 같은 것이라든지?
A: 저는 국내(한국) 정치 담당이에요. 한국 정치 상황을 보고서로 만들어 본부에 보고하는 일이죠. 그리고 공고부라고 해서 대사관이 인터뷰할 때 인터뷰에 관련된 도움을 주는 일도 하고요. 현재는 한국에 독일을 홍보하는데 주력하고 있어요.
여성외교관으로서의 어려운점이라……. 여성으로 일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은 없어요. 단지 여자 선배가 거의 없고 거의 남자분이세요. 제가 외무부 시험을 봐서 합격했을 당시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비율이 50%가 넘었다고 해요. 지금은 계속 여성의 비율이 50%이상이만, 그 당시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죠. 그래서 제 위의 선배들은 거의 남자에요. 남자 외교관은 결혼해서 자녀가 참 많아요. 5명 이상인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여자 외교관들은 모두 미혼이에요. 자신의 직장으로 포기하고 해외로 따라오는 남편은 없죠. 그래서 그런지 제게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만나고 싶네요.
외교관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느 분야에서 일하고 계셨을지?
A: (웃으며) 아마 실업자가 되어있을지도……. 재무관리를 전공했으니 투자은행에 취업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현재 미국발 금융위기로 독일 투자회사들도 많이 어려워서 현재 독일에서도 젊은 사람들의 구직난이 엄청난 사회문제에요.
이제 한국 문화 관련해서 질문 드릴게요. 한국 전통과 관련된 서기관님의 남다른 특기(재주)가 있다고 들었어요.
A: (웃으며) 특기까지는 아니고, 옛날부터 한국 전통 악기를 배우고 싶었어요. 지금 '가야금'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는 (가야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어요. 막연히 배우고 싶다고만 생각했어요.
얼마나 배웠어요?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A: 2007년부터 배웠는데 잘 하는 편 아니에요. 지금 '도라지'나 '아리랑' 정도 연주할 수 있어요. 독일에 있을 때 바이올린을 10년 배웠어요. 서양은 악보가 멜로디도 보이고 음악 해석이 쉬운데, 국악은 악보를 봐도 음악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난감해요. 가야금을 칠 때 어디에 강하게 해야 하고 느리게 해야 하는지 해석이 불가능해요.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와서 국악을 들었는데 듣기만 했지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악기를 배우면 한국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우게 되었지요. 독일로 돌아갈 때까지 잘 배우려고요.참 이번에 독일정부에서 한국국민을 대상으로 독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고 들었어요.
A: 네. 이번에 새롭게 만들었어요. 물론 독일 대사관 홈페이지가 있어요. 그런데 들어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서버가 독일에 있어서 느리고 내용도 재미있지 않고 콘텐츠도 다양하지 않잖아요. 이 홈페이지만으로는 독일에 대해 알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2007년 1월에서 2월까지 한국사람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독일에 대한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좋지만 독일이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루하고 보수적인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지요. 이미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자유롭고 재미있게 독일에 대해 알려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홈페이지에는 정확히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나요?
A: 홈페이지(www.germany-in-korea.or.kr)에 들어와 보세요. 독일의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소개와 한국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독일 대학교나 유학정보 등이 있어요. 재미있는 것도 많이 있어요. 움직이는 홈페이지랄까요? 특히 독일의 모습을 360도로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는데, 진짜 재미있어요. 앞으로 더욱 꾸며나갈 거예요. contact us를 누르면 우리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어요. 홈페이지를 방문하시고 좋은 점이나 나쁜 점에 대해 평가해 주시면 더욱 좋은 홈페이지를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일인이 느끼는 한국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A: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독일인들은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88 올림픽 이후에야 조금씩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기업은 잘 알아요. 예전은 삼성이 일본기업으로 알고 있던 독일 사람들도 이제는 현대나 삼성이 한국기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앞으로 한국을 홍보해 나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도 한국의 정치나 문화에 대해 잘 몰라요.
마지막으로 독일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나 추천하고 싶은 명소가 있나요?
A: 유럽은 꼭 여름에 와야해요. 습도도 낮고 해도 길어서 진짜 좋거든요. 저는 독일 베를린을 추천해요. 통일 이후 많이 발전했어요. 디자이너도 많이 거주하고 있고 오케스트라나 뮤지엄 등 고급문화도 발전한 곳이 바로 베를린입니다. 물가도 높지 않고요. 젊은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에 많이 모여들어서 문화가 다양해요. 여유가 있으시다면 도시 외에도 독일의 전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진짜 자연이 아름답거든요. 독일 많이 관심 가져주세요. 새로 열은 홈페이지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APEC, ASEAN은 나도 아는데,
원문 & 사진 : http://blog.naver.com/ilovemofat/140069542269
APEC, ASEAN은 나도 아는데,
ACD, FEALAC, ASEM은 또 뭐지??
5월 25일부터 26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ASEM 외교 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APEC과 ASEAN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G20 정상회의도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ASEM 정상회의? 한 번 쯤은 들어본 것 같은데...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나라들이 중심이 되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각국 협력의 필요성이 강화되면서 국제협력체제는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친숙한 ASEAN+3, APEC 이외에도 ASEM, ACD, FEALAC 등 우리가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 중인 다른 국제협력체제가 있습니다.
ACD회원국 분포도 ACD 7차 회의 카자흐스탄에서
아시아 협력대화(ACD : Asia Cooperation Dialogue)
지난 2000년 9월 태국의 탁신 총리는 ASEAN+3 체제를 넘어 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주창했습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ACD(아시아 협력대화)입니다. 2002년 태국 차암에서 처음 출범한 ACD 외교장관회의는 정책대화와 협력사업으로 구분되어 운영됩니다. ACD는 지역 및 국제정세 등에 관해 회원국 외교장관 간 의견교환을 함과 동시에 역내 협력 강화를 위해 현재 20개 협력 분야별로 선도국가(Prime Mover)를 지정하여 협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IT 협력 분야의 선도국가로서 활동 중에 있습니다.
동북아 4개국, 동남아 10개국, 서남아 5개국, 중앙아 5개국, 중동 7개국 등 총 31개의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요 아시아 국가의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특히 러시아는 실질적으로 아시아에 완전히 해당된다고는 볼 수 없지만 ACD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열린 제7차 회의는 2008년 10월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되었으며 문화 분야 협력이 새로운 협력사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7년 6월, 7차 회의를 개최하여 ‘서울 IT선언’을 채택한바 있습니다. 올해 8차 회의의 의장국은 스리랑카이며 9~10월 중 개최될 예정입니다.
FEALAC 회원국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
(FEALAC : Forum for East Asia-Latin America Cooperation)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이하 FEALAC)은 21세기 동아시아와 중남미간 대화와 협력제고를 위한 포괄적 다자 포럼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가 98년 칠레를 방문하여 Eduardo Frei 대통령에게 FEALAC창설을 제안하였으며, 99년 9월 싱가포르에서 제1차 고위관리회의를 시작으로 공식출범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아시아 내 지역 협력이나, APEC이나 ASEM과 같이 아시아-유럽 혹은 아시아-태평양 협력체제를 중심으로 국제 협력활동을 펼쳐왔습니다. FEALAC는 아시아가 다른 지역에 비해 교류가 많지 않았던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과 맺은 협력포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FEALAC는 크게 외무장관회의와 고위관리회의, Working group회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외무장관회의는 2년에 1번 개최하고 있으며, 고위관리회의와 Working group회의는 1년에 한 번 이상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현재 FEALAC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중남미에서 아르헨티나가 공동의장국으로서 현재 지역 조정국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동아시아 지역조정국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지금은에콰도르와 함께 Working group회의 공동 의장국을 맡아 양 지역간 무역・투자증진 및 중소기업 협력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FEALAC 창설 이래, 중남미지역은 한국의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남이국가간 교역량은 1999년 115억 달러에서 2007년 371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의 대 중남미 투자금액은 같은 기간 2.2억불에서 12억불로 5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우리는 무역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FEALAC 활동이 우리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완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다소 멀게 느껴지는 대륙 라틴아메리카도 FEALAC와 함께라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듯 한 느낌입니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 Asia Europe Meeting)
ASEM 로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이하 ASEM)를 살펴보는데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로고인데요. ASEM로고는 2003년 7월 제5차 발리 외무장관회의에서 채택되었습니다. 아시아의 두문자인 “A"를 서예체로 표현하고 유럽의 두문자인 ”E"를 로마체로 표현하여 이들을 조합함으로써 아시아와 유럽의 상호협력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로고에서 빨간색은 아시아를, 파란색은 유럽을 상징하는데, 이는 서로 다른 동서 문화의 화합과 공존공영의 염원을 의미합니다. ASEM의 로고를 통해 우리는 ASEM의 정신이나 탄생 목적 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ASEM은 아시아 16개국 및 유럽연합 27개국 정상들, 그리고 EU 집행위원장과 ASEAN 사무총장이 만나 2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를 의미합니다. 현재 ASEM은 전 세계 인구의 59%, 총생산의 51%, 무역의 64%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세계에서 비중 있는 협력체제로서 아시아-유럽간 긴밀한 협력의 채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ASEM내에는 정상회의를 정점으로 외무장관회의, 경제장관회의, 재무장관회의를 비롯한 각종 장관회의와 고위관료회의가 단계별로 정례화 되어 있습니다.
ASEM 회원국
ASEM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세 개의 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협력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는 한반도 문제 등 주요 지역 사안과 국제테러 등 범세계적 문제가 논의됩니다. 경제 분야는 상호 무역 및 투자 확대와 관련한 협력사업에 대한 얘기가 오고가며,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양 지역의 새로운 문화적 유대관계 구축을 위해 인적 교류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여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ASEM 회의 서울개최를 축하하며 아이들이 국기로 만든 한반도 ASEM 3차 서울회의
1990년대 이후 냉전의 질서가 무너지고 세계는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 3개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와 유럽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밀접한 북미와 유럽, APEC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는 북미와 아시아에 비해 소원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후 아시아는 일본, 한국과 같은 신흥경제대국이 등장하고 유럽은 EU를 중심으로 통합이 진행되면서, 두 지역 간 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94년 싱가포르는 처음으로 ASEM창설을 제의하고, 동북아 3국과 ASEAN, EU가 동의함으로서 96년 태국에서 처음으로 ASEM 정상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3차 ASEM 정상회의는 우리나라 정부수립 이후 가장 많은 각국 정상(22개국)이 참여한 외교행사로 기록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외교사에 길이 남는 업적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이 순간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자국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만 보더라도 각국은 자국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G20과 같은 글로벌 협력 체제를 통해 세계 공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서 얘기했던 국제협력 체제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꾸준한 활동을 통해 차츰 위상을 높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우리나라 외교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참고자료 : 외교통상부 ASEM 길라잡이 참고 자료집
외교통상부 홈페이지 http://www.mofat.go.kr/state/internationalcooperation/acd/index.jsp
http://fealac.mofat.go.kr/
< 외교통상부 블로그 1기 대학생 기자 강승태 >
APEC, ASEAN은 나도 아는데,
ACD, FEALAC, ASEM은 또 뭐지??
5월 25일부터 26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ASEM 외교 장관회의가 열렸습니다. APEC과 ASEAN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G20 정상회의도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ASEM 정상회의? 한 번 쯤은 들어본 것 같은데...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나라들이 중심이 되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각국 협력의 필요성이 강화되면서 국제협력체제는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친숙한 ASEAN+3, APEC 이외에도 ASEM, ACD, FEALAC 등 우리가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 중인 다른 국제협력체제가 있습니다.
ACD회원국 분포도 ACD 7차 회의 카자흐스탄에서
아시아 협력대화(ACD : Asia Cooperation Dialogue)
지난 2000년 9월 태국의 탁신 총리는 ASEAN+3 체제를 넘어 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주창했습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ACD(아시아 협력대화)입니다. 2002년 태국 차암에서 처음 출범한 ACD 외교장관회의는 정책대화와 협력사업으로 구분되어 운영됩니다. ACD는 지역 및 국제정세 등에 관해 회원국 외교장관 간 의견교환을 함과 동시에 역내 협력 강화를 위해 현재 20개 협력 분야별로 선도국가(Prime Mover)를 지정하여 협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IT 협력 분야의 선도국가로서 활동 중에 있습니다.
동북아 4개국, 동남아 10개국, 서남아 5개국, 중앙아 5개국, 중동 7개국 등 총 31개의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요 아시아 국가의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특히 러시아는 실질적으로 아시아에 완전히 해당된다고는 볼 수 없지만 ACD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열린 제7차 회의는 2008년 10월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되었으며 문화 분야 협력이 새로운 협력사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7년 6월, 7차 회의를 개최하여 ‘서울 IT선언’을 채택한바 있습니다. 올해 8차 회의의 의장국은 스리랑카이며 9~10월 중 개최될 예정입니다.
FEALAC 회원국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
(FEALAC : Forum for East Asia-Latin America Cooperation)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이하 FEALAC)은 21세기 동아시아와 중남미간 대화와 협력제고를 위한 포괄적 다자 포럼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가 98년 칠레를 방문하여 Eduardo Frei 대통령에게 FEALAC창설을 제안하였으며, 99년 9월 싱가포르에서 제1차 고위관리회의를 시작으로 공식출범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아시아 내 지역 협력이나, APEC이나 ASEM과 같이 아시아-유럽 혹은 아시아-태평양 협력체제를 중심으로 국제 협력활동을 펼쳐왔습니다. FEALAC는 아시아가 다른 지역에 비해 교류가 많지 않았던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과 맺은 협력포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FEALAC는 크게 외무장관회의와 고위관리회의, Working group회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외무장관회의는 2년에 1번 개최하고 있으며, 고위관리회의와 Working group회의는 1년에 한 번 이상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현재 FEALAC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중남미에서 아르헨티나가 공동의장국으로서 현재 지역 조정국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동아시아 지역조정국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지금은에콰도르와 함께 Working group회의 공동 의장국을 맡아 양 지역간 무역・투자증진 및 중소기업 협력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FEALAC 창설 이래, 중남미지역은 한국의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남이국가간 교역량은 1999년 115억 달러에서 2007년 371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의 대 중남미 투자금액은 같은 기간 2.2억불에서 12억불로 5배 이상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우리는 무역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FEALAC 활동이 우리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완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다소 멀게 느껴지는 대륙 라틴아메리카도 FEALAC와 함께라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듯 한 느낌입니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 Asia Europe Meeting)
ASEM 로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이하 ASEM)를 살펴보는데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로고인데요. ASEM로고는 2003년 7월 제5차 발리 외무장관회의에서 채택되었습니다. 아시아의 두문자인 “A"를 서예체로 표현하고 유럽의 두문자인 ”E"를 로마체로 표현하여 이들을 조합함으로써 아시아와 유럽의 상호협력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로고에서 빨간색은 아시아를, 파란색은 유럽을 상징하는데, 이는 서로 다른 동서 문화의 화합과 공존공영의 염원을 의미합니다. ASEM의 로고를 통해 우리는 ASEM의 정신이나 탄생 목적 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ASEM은 아시아 16개국 및 유럽연합 27개국 정상들, 그리고 EU 집행위원장과 ASEAN 사무총장이 만나 2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를 의미합니다. 현재 ASEM은 전 세계 인구의 59%, 총생산의 51%, 무역의 64%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세계에서 비중 있는 협력체제로서 아시아-유럽간 긴밀한 협력의 채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ASEM내에는 정상회의를 정점으로 외무장관회의, 경제장관회의, 재무장관회의를 비롯한 각종 장관회의와 고위관료회의가 단계별로 정례화 되어 있습니다.
ASEM 회원국
ASEM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세 개의 협력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협력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는 한반도 문제 등 주요 지역 사안과 국제테러 등 범세계적 문제가 논의됩니다. 경제 분야는 상호 무역 및 투자 확대와 관련한 협력사업에 대한 얘기가 오고가며,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양 지역의 새로운 문화적 유대관계 구축을 위해 인적 교류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여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ASEM 회의 서울개최를 축하하며 아이들이 국기로 만든 한반도 ASEM 3차 서울회의
1990년대 이후 냉전의 질서가 무너지고 세계는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 3개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와 유럽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밀접한 북미와 유럽, APEC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는 북미와 아시아에 비해 소원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후 아시아는 일본, 한국과 같은 신흥경제대국이 등장하고 유럽은 EU를 중심으로 통합이 진행되면서, 두 지역 간 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94년 싱가포르는 처음으로 ASEM창설을 제의하고, 동북아 3국과 ASEAN, EU가 동의함으로서 96년 태국에서 처음으로 ASEM 정상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3차 ASEM 정상회의는 우리나라 정부수립 이후 가장 많은 각국 정상(22개국)이 참여한 외교행사로 기록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외교사에 길이 남는 업적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이 순간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자국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만 보더라도 각국은 자국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G20과 같은 글로벌 협력 체제를 통해 세계 공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서 얘기했던 국제협력 체제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꾸준한 활동을 통해 차츰 위상을 높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우리나라 외교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참고자료 : 외교통상부 ASEM 길라잡이 참고 자료집
외교통상부 홈페이지 http://www.mofat.go.kr/state/internationalcooperation/acd/index.jsp
http://fealac.mofa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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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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