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아랍의 지배자들 사이에선 미지의 세계로 널리 알려진 모로코. 대서양과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접해 있는 모로코를 선망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사람들은 비단 아랍인들뿐만 아니었다. 페니키아, 그리스, 그리고 세계의 정복자 로마까지. 미지의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했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7세기경부터 이 땅을 지배한 아랍인들이다.
Moro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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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g Chebbi , dune field near village of Merzouga, on edge of Sahara Desert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_ 모래사구_ 에르그 《모래로 뒤덮인 광대한 지역》
모로코에서는 많은 헐리우드 영화가 촬영되었다.
모로코에서 처음 촬영된 영화는 말린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였고 1942년 카사블랑카가 만들어졌다. 피터 오 툴(Peter O'Toole)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촬영으로 모로코를 활개치고 다니는 바람에 모로코는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환상의 나라로 부풀려졌다.
푸른빛 문과 지중해의 빛으로 감도는 좁은 골목안의 집들
카사블랑카의 자홍색 황혼의 해변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카사블랑카
전세계의 모든 도시들 중 헐리우드는 바로 이곳을 택해 이국적 식민지땅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만약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를 보기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모로코 최대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인 카사블랑카는 이미 거대도시이다. 말끔한 수트와 세련된 선글라스들 사이에서 모로코 전통의상인 뷔르누스(burnous)가 오히려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항구도시는 프랑스가 재건하기 전까지 침체일로를 걷고 있었다. 프랑스는 큰 길을 닦고 시민공원을 만들고 모레스크(무어인)들에게 공공건물을 할당했다.카사블랑카의 성지인 유서지구도 한번 둘러볼 만 하다. 하산 2세 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 쁠라스 모하메드 5세(Place Mohammed V)광장에 가면 모로코에서 가장 인상깊은 모레스크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카사블랑카는 모하메드 5세 공항을 라바트와 공유하고 있으며 유럽과 중동으로 정기운행을 한다.
성채의 요새들_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도시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모로코의 상징적 주임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길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웅장함이 이곳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성지인 엘 발리(el-Bali) -올드 페그라베스-는 현존하는 가장 큰 중세도시들 중 하나이다. 이 성지는 성벽과 큰 문으로 둘러싸여져 더욱 웅장해 보인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여느 도시들과는 달리 엘 발리는 한번도 벽이 무너진 적이 없었다. 대신 거주민이 서남쪽으로 이동해서 구릉지대에 퍼져 새 페그라베스의 북남쪽으로 원호모양을 이루었다. 9400개의 거리와 골목들로 이루어진 옛도시에는 1350년대에 지어진 높은 메데르사 부 이나니아(Medersa Bou Inania) 신학대학이 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헤너 수크(henna souq)는 머리 염색재료와 여성의 손발 문신재료로 가득하다. 바로 옆에 있는 페그라베스 엘 즈디드(Fès el-Jdid)는 유태인 사회의 중심으로 볼만한 건물들이 많이 있다. 두도시사이에 있는 다르바타(Dar Batha) 박물관이 있다. 라바트, 마라케쉬, 탄제르에서 열차를 타는 것이 이곳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방법이다.
모로코에는 성채가 많다. 주정부궁으로 쓰는 성채이다.
다른 여러 북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모로코는 역사이래 한 종족에 의해서 지켜져왔다. 버버족(혹은 땅의 사람이란 뜻으로 이마지엔)은 수천년전에 이곳에 정착했고 한때는 모로코와 이집트 사이의 일대를 지배하기도 했다. 버버족은 여러 씨족, 부족으로 나뉘어져 항상 독립을 갈망했다. 아프리카 국가중 가장 매력적인 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독립심 덕분일 것이다. 페니키아인들도 버버족을 몰아내지 못했고 심지어 로마인들도 BC 146년 카르타고 함락후 조차도 버버족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관광객을 위한 코프라 쇼
마라케쉬
모로코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서 시장과 축제로 유명한 전 수도로서, 마라케쉬는 더할 나위없이 생기발랄한 도시이다. 가장 번화한 중시지는 쁠라스 드제마 엘 프나(Place Djemaa el-Fna)라는 큰 광장이다. 야외음식점이 줄지어 있고 군침을 돌게하는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저글러, 이야기꾼, 뱀장수, 마술사, 서커스, 광인들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 수크스(시장)은 모로코에서 최고이며 가격이 저렴한 호텔들도 아주 많다. 유서지구의 볼거리는 알모라비드 스타일의 쿱바 바아딘(Koubba Ba'adiyn) 서원 별채, 웅장한 쿠투비아(Koutoubia)서원, 그리고 모로코 예술박물관인 빨레 다르 시 사이드(Palais Dar Si Said) 등이다. 내륙도시인 이곳으로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서 기차와 버스가 정기운행한다.
거친 밀가루의 거친 세모닐라 파스타의 이 음식은_ 북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다이어트 음식이다.
모로코의 음식은 특이하지는 않지만 맛이 좋고 든든한 편이다. 주식은 쿠스쿠스(couscous)라는 것인데 세모리나(semolina)를 곱게 갈은 것으로 보통 야채와 양 캐서롤과 함께 나온다. 스위트 민트차를 즐겨마시지만 그렇다고 술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모로코엔 금주령이 없다.
귀가 찢어지는 사원의 예배소리를 알리는 스피커와 위성 안테나 접시_
아주 오래된 것과 현대적인 것이 박힌 페스 골목길.
영국의 권위있는 BBC TV에서는 페스(Fes)의 골목에 대해서 특집방송을 내보낸 일이 있었다. 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진행과정과 지상 최대의 미로골목이 완성되기까지. 그 내용은 이렇다. 아주 오래 전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크고 작은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세월이 흐르면서 험준한 미들 아트라스 산맥을 동서로 연결하는 중간 위치에 자리잡은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여러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었다. 빈번한 전쟁으로부터 목숨과 재산을 보존할 목적으로 주민들은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로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Essaou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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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ouira's old waterfront city nestled in behind ramparts
에사우이라의 바닷가 성채
Docked fishing boat awaiting repairs
항구의 조선소에 정박중인 배를 수리하고있다.
Smiling musicians in the streets of Essaouira
에사우이라에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길거리 음악사
에사우이라(Essaouria)
개별여행자에게 인기있는 해변마을이다. 팩키지 여행상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이곳의 아름다운 해변이 남쪽으로 수킬로 미터나 뻗어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마을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휴식.이곳이 요새는 포르투갈, 프랑스, 그리고 버버의 군사건축의 혼합물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규모의 웅장함이 이 마을의 신비스러움을 더해준다. 이 마을이 면한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스칼라 뒤 뽀(Skala du Port)는 경치가아주 좋아 오손 웰스(Orson Welles)가 그의 영화 오델로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F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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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2세의 이슬람사원
모하메드 5세는 1957년 자신을 왕으로 격상시켰고 4년뒤 아들인 하산2세(Hassan II) 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산 2세는 스페인 영역이던 서사하라까지 평화행진을 함으로서 모로코 국민의 가슴속에 깊은인상을 심어주었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무려 35만이 넘는 자원병력의 힘으로 하산의 추종자들은 풍부한 광산지대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토착 사라위스(Sahrawis)들을 정복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 십만여명이 넘는 거주자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구이아 알 함라(Saguia al-Hamra) 와 리오 드 오로(Rio de Oro)가 이끄는 서 사하라 인민전선은 그 점령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모로코를 상대로 길고 섬뜩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페스의 아주 오래된 염색공장
미로를 연상시키는 골목길로 상징되는 페스의 자랑거리이자 주민들의 삶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죽이다. 골목과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페스의 가죽산업을 주도하는 곳은 겉보기에도 매우 초라하고 허름해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터를 잡고 있는 가정집이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 문을 통과하여 집 안으로 들어서면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광경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수백 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페스의 가죽들은 양과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긴 다음 원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탱크에 장시간 보관한다. 가죽의 종류에 따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털을 제거하거나 가죽을 손질하여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는 염색용 탱크로 옮겨 염색을 실시하고 용도에 따라 그늘과 햇빛에서 건조한다.
페스의 가죽 제품이 밀라노와 파리의 유명 브랜드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까닭은 모든 공정과정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원료 또한 오직 자연에서 생산된 것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충 추산해도 수십 곳에 이르는 공장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간혹 기업형태를 띠고 있는 곳도 있으나 그 숫자는 극히 적다. 지상 최대의 가죽 생산지답게 많은 주민들은 가죽과 연관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가죽 생산부터 각종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 전체 인구의 20%에 이른다.
가죽으로 대표되는 페스인 만큼 골목과 가정을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나 공예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공방과 상점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골목을 따라 조성된 공방에서 제작되는 공예품은 너무 앙증스럽고 아름다워 방문객으로 하여금 수시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페스의 공예품은 독특하고 섬세한 문양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하여 골목을 찾는 방문객은 물론이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도 너나없이 가죽제품을 구입하기에 여념이 없다.
Ornate crafts for sale at the Fès market
페스 시장에서 파는 장식수공예품들
페스
영국의 권위있는 BBC TV에서는 페스(Fes)의 골목에 대해서 특집방송을 내보낸 일이 있었다. 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진행과정과 지상 최대의 미로골목이 완성되기까지. 그 내용은 이렇다. 아주 오래 전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크고 작은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세월이 흐르면서 험준한 미들 아트라스 산맥을 동서로 연결하는 중간 위치에 자리잡은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여러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었다. 빈번한 전쟁으로부터 목숨과 재산을 보존할 목적으로 주민들은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로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서기 809년에는 이드리스 2세에 의해 세워진 이드리스 왕국의 수도이기도 한 페스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옛 수도보다는 달동네에 가깝다. 실망과 기대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페스의 구도심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컸다. 좁은 골목길이 끝났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다시 새로운 골목이 시작되고 사방으로 연결된 작은 골목들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숫자가 더 늘어나 골목길을 걸을수록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골목이 얼마나 되기에 세계 최대의 골목길로 알려져 있을까. 궁금증이 발동하여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에게 골목의 총 길이를 묻자, 그의 대답은 구 도시의 반경은 2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골목의 길이는 자그마치 70킬로미터나 된다는 설명이다. 반경의 35배에 가까운 골목길.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세 번이나 거듭 확인해 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미로를 연상시키는 골목길로 상징되는 페스의 자랑거리이자 주민들의 삶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죽이다. 골목과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페스의 가죽산업을 주도하는 곳은 겉보기에도 매우 초라하고 허름해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터를 잡고 있는 가정집이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 문을 통과하여 집 안으로 들어서면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광경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수백 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페스의 가죽들은 양과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긴 다음 원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탱크에 장시간 보관한다. 가죽의 종류에 따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털을 제거하거나 가죽을 손질하여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띠고 있는 염색용 탱크로 옮겨 염색을 실시하고 용도에 따라 그늘과 햇빛에서 건조한다.
페스의 가죽 제품이 밀라노와 파리의 유명 브랜드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까닭은 모든 공정과정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원료 또한 오직 자연에서 생산된 것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충 추산해도 수십 곳에 이르는 공장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간혹 기업형태를 띠고 있는 곳도 있으나 그 숫자는 극히 적다. 지상 최대의 가죽 생산지답게 많은 주민들은 가죽과 연관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가죽 생산부터 각종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 전체 인구의 20%에 이른다.
가죽으로 대표되는 페스인 만큼 골목과 가정을 불문하고 어느 곳에서나 공예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공방과 상점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골목을 따라 조성된 공방에서 제작되는 공예품은 너무 앙증스럽고 아름다워 방문객으로 하여금 수시로 지갑을 열게 만든다. 페스의 공예품은 독특하고 섬세한 문양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하여 골목을 찾는 방문객은 물론이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도 너나없이 가죽제품을 구입하기에 여념이 없다.
페스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으로 몇 가지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골목길을 전문으로 안내해주는 소년과의 만남이었다.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장의 입구를 찾을 수 있지만 처음 페스를 찾았을 때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입구를 못 찾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난 구세주는 모로코의 전통복장에 모자까지 착용한 소년이었다.
이 소년은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순간에 알아보고서 가죽공장으로 안내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몇 시간 후 알게 된 것이지만 페스에는 사진기를 둘러맨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하나같이 길을 헤매기 때문에 길 안내를 하는 직업이나 부업으로 실시하는 소년과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소년의 표정이 너무 맑고 순수해 보여 그의 말을 믿고 따라나서던 나는 불과 5분도 지나기 전에 그의 손에 거금을 쥐어주었다. 그가 요구한 금액은 자그마치 30불. 3불도 아닌 30불이란 소리에 그 이유를 묻자 길을 안내해주는 정당한 수고료란다. 얼마 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던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사진을 촬영할 심정으로 그에게 길 안내비용으로 10불을 지불하는 선에서 타협을 끝내고 염색공장으로 이동했다.
미로 같은 골목과 가죽으로 유명한 페스는 참으로 볼거리가 많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는 여러 개의 게이트마다 형성된 시장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광장에 자리한 앙증스러운 공방과 상점에 이르기까지. 이런 흥미로운 삶의 공간들이 즐비한 페스지만 한 가지 여타지역하고 분명하게 구분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 중에는 여성도 간혹 보이지만 물건을 거래하는 주체가 모두 남자라는 사실. 회교를 신봉하는 아랍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은 가정집이나 작은 골목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거나 모이는 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이를 떠나 많은 아낙네들은 시장에 와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물건을 고르지 않고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필요한 물건은 남자들이 직접 구입해 온다. 남성들이 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한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여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수시로 관찰해 본 결과 대부분의 물건은 남자들이 구입하고 여자들은 휴식을 즐기다 남편이 물건을 구입해 오면 함께 집으로 향한다.
물건을 구입하는 흥미로운 방법과 더불어, 미로와 같은 길과 가죽 공방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페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볼거리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마을 외곽에는 포장된 신작로도 있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옛 도시지역에서 자동차는 물론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구나 목적지에 가려면 직접 걷거나 당나귀를 이용해야 한다. 페스의 주민들이 교통수단으로 걷거나 당나귀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골목이 너무 좁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지점은 모두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페스의 구 시가지는 오직 사람과 당나귀만 통행이 가능하다.
인간이 살 수 없을 곳이라고 생각하는 고원과 사막에 마을이 있고, 한번 들어온 길을 다시 찾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도시 페스. 어쩌면 똑같아 보이는 골목과 주변 풍경을 조금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여느 곳에서 볼 수도 없는 이런 골목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페스로 향하여 움직이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Marrak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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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with trained falcon, traditionally used to hunt Houbara Bustard birds
한남자가 훈련된 송골매와 함께 있다_ 전통적으로 전쟁의 메신저로 매를 사용했다.
자크 마졸레르 화가의 집_ 지금은 이슬람 현대 미술관으로 바뀌었다_ Majorelle House: once home of painter Jacques Majorelle, now an Islamic art museum
모로코는 모둔 종류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 같다. 프랑스의 네오바로크 화가인 유진 드라크로아(Eugene Delacroix)는 1830년대 모로코를 방문한뒤 모로코를 그리기 위해 몇통의 물감을 쏟아부었는지 모른다. 시장풍경, 하렘생활, 사자 사냥등이 그의 캔버스를 장식했다.
몇대의 초록마차가 서있다_ 모로코의 말들은 아주 고분고분하다_ Several green carriages, and some very obedient horses
마라케쉬의 식당가
젬마 궁에 엄청나게 큰 모자를 눌러쓴_ 물장사들_ 더운 나라여서 관광객에게 물장사 사업이 괜찮다_ Water sellers, wearing enormous hats, in Place Jemaa El Fna
달팽이가 주식인 나라_ Boiled land snails, usually served with hot sauce, at Djemaa el-Fna market
다양한 뜨개질로 만든 모로코 특유 디자인의 크로셔_ 뜨개질 수공예품 모자들이 진열 되어 있다.Various crocheted hats for sale in Souk on Rue du Souk el-Kebir
의회궁_ Lolly-like trees outside Palais des Congres convention centre
마라케쉬
모로코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서 시장과 축제로 유명한 전 수도로서, 마라케쉬는 더할 나위없이 생기발랄한 도시이다. 가장 번화한 중시지는 쁠라스 드제마 엘 프나(Place Djemaa el-Fna)라는 큰 광장이다. 야외음식점이 줄지어 있고 군침을 돌게하는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저글러, 이야기꾼, 뱀장수, 마술사, 서커스, 광인들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 수크스(시장)은 모로코에서 최고이며 가격이 저렴한 호텔들도 아주 많다. 유서지구의 볼거리는 알모라비드 스타일의 쿱바 바아딘(Koubba Ba'adiyn) 서원 별채, 웅장한 쿠투비아(Koutoubia)서원, 그리고 모로코 예술박물관인 빨레 다르 시 사이드(Palais Dar Si Said) 등이다. 내륙도시인 이곳으로 카사블랑카와 라바트에서 기차와 버스가 정기운행한다.
사진_ 론리 프래닛
글_ justinKIM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지중해inBLUE ˚통
모로코 신비로운 아름다움
http://joiedevivre.tistory.com/1249
모로코 ① 지중해의 빛과 혼
http://tong.nate.com/justinkim/44292711
모로코 ② 천년고도_ 페스
http://tong.nate.com/justinkim/44293237
모로코 ③ 사진여행_ 론리 프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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